인공위성을 보면서 로켓이라고

로켓과 인공위성을 보고

우주 공간에 올라간 인공위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빠른 것은 약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빛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빠른 것이지만, 우주 공간에서는 공기의 저항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사람들은 우주 공간에서 빛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로켓을 연구하는 것에서 ‘광자로켓’입니다. 엄청난 일이지만 또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러한 빛의 속도가 아니라면, 이 넓은 우주를 결코 적당히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이군요. 과연 그런 빛의 속도에서도 30억 년이 걸리는 거리라는 한 과학자의 말을 들으면 실망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경외감이 커진다고 해야 할지. 물론 여기서 ‘외경심’이란 그것을 그렇게 만드신 분, 즉 신에 대한 것입니다. 하하하, 신에게는 ‘거리’라는 구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희에게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자신들을 「벌레 이하의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극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죠. 어떤 무한한계를 바라볼 때 우리의 모습과 능력은 벌레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아니, 그것보다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냥 하느님이 따라다니는 벌레라면 말이 달라지죠. 그렇죠. 벌레라는 것은 사람 손에 잡히면 그냥 꿈틀거리다가 거의 마지막을 맞이하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것도 참 이상하죠. 사람들은 우연히 벌레를 보거나 얻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벌레의 최후를 지켜봅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죽어가는 벌레를 보게 되는 거죠. 눌러죽이는 사람, 밟아죽이는 사람, 돌을 또는 돌에 던지는 사람, 그리고 적어도 멀리 던져버리는 사람이 있죠. 그 벌레는 또 그 사람에게 과연 무슨 사죄를 지었을까.

그래서인지 불교 승려들은 다니면서 개미 한 마리라도 밟아 죽이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해요. 물론 그 기분은 좋지만 저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미가 자기 발에 밟혀 죽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쏟고, 만약 개미가 밟혀 죽는 걸음이라고 해도 그것이 누군가를 돕고 또 힘을 주는 걸음이라면 그런 곤충 살상 정도면 됩니다. 즉, 사람은 남을 도와서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스님들도 다 그렇게 하시겠지만요.

그렇죠. 머나먼 우주 공간을 나는 로켓과 위성은 우리가 가진 과학의 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또 첨단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바로 ‘사람을 위한 것’ 입니다. 앞으로 있어야 할, 있어야 할 그리고 나아가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다만 또 그렇게 ‘모든 것’을 갖게 한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마땅히 해야 하는데, 바로 ‘칭찬받기를 원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즉 로켓이나 인공위성을 가지고도 우주 공간에서 찬양하고, 토성이나 화성에 내려와 밟아 보더라도 찬양, 즉 신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요? 그 모든 존재들을 다 만들고 거기에 두고, 우리가 가게도 하고, 또 그런 거를 통해서 과연 자기 존재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죠. 누가 창조주보다 우위에 있고 누가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은 다 물리쳐야 하는데, 만약 첨단과학이 신의 자리에 서려고 하고, 또 그래서 인공위성 같은 것이 만약 섬김의 형태 안에 있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옷을 찢으면서 베끼고, 먼지를 날리며 울고, 회개해야 합니다.’

허허, 사실일까.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로켓처럼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불을 부으면서 그 힘으로 솟구쳐 올라가야 하는데, 그 때 그 땅 밑의 개미나 곤충 등은 모두 죽습니다.” 그 모든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인데… 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해야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일단 ‘사람’이 중요하니까 만약 그 곤충들이 목숨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한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돌도끼를 들고 살았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그것으로 물론 우리 사람들은 작은 생명도 가능한 한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린다-‘가 되어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은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렸고 어떤 다른 생명체도 그것을 막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은 우주로 시선을 돌렸을까요? 하, 지구가 되든 토성이 되든 화성이 되든, 또는 우주가 되든 저는 그 모든 것이 ‘사람의 발’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사람에게 정복되기 위해서 – 그러니까 사람은 모든 우주의 만물도 정복해야 하는데, 다만 그런 것을 통해 신에 대한 경외심이 더욱 높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또 작금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모든 사물과 만물들을 발 밑에 두면서 심지어 하느님조차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된 사람의 오만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모든 오만함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옥이란 무지하고 못된 짓을 하고 들어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오만하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바로오만이회개하는게제일힘들고어렵기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요?。 라고 묻는다면 저는 “거만해서” 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세상사는사람누구나회개하고다시태어나야하는데거만한척그회개를막는일은또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또 그것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또 그렇게 구원받지 못하면 갈 곳은 단 한 곳뿐이며, 이 글의 제목을 ‘로켓과 위성을 보며’라고 한 것은 우리의 신앙과 신뢰를 가로막는 첨단과학을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였습니다. 로켓과 위성이라는 우리 눈에 보이는 첨단 과학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체를 믿고, 또 믿고 간다는 건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쉬운 사람도 있죠. 그것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 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성령충만’인 사람이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우주공간 안에서도 인공위성이 아닌 ‘우주’를 바라볼 수 있고, 그렇게 해주신 분을 더욱 경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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