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 1(잉어의 특징, 상징성)

잉어, 마고이

1. 잉어의 특징 잉어는 한자로는 “鱼리”라고 쓰지만”괴자”,”모자”이라고도 불렸다. 영어로는 “Carp”으로 알려졌다. 잉어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생선의 하나로 취급되어 왔다. 민물고기 중에서도 가장 큰 어종 중 하나로 큰 잉어는 사람 키보다도 높은 것이 자주 잡히고 이런 사진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잉어의 몸통은 길고 가로는 평평하고, 머리는 원뿔형으로 등은 갈색이고 배는 흰색이고 배는 엔화로 말굽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등의 색깔은 검다. 입가에는 2조의 수염이 있는 수염 없는 붕어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잉어는 적어도 20㎝이상으로 큰 것은 최대 122센치 정도이다. 등 지느러미의 아래 부분은 비교적 길고 등 지느러미와 배 지느러미는 톱니형으로 된 딱딱한 가시가 있다. 잉어의 몸의 옆면은 황금색을 띠고, 꼬리 지느러미의 아래는 홍색이다. 잉어의 몸체에는 십자 무늬가 있다. 잉어는 죽어도 비늘이 하얗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36개의 비늘이 있는 비늘마다 검은 점이 있다.

서구 국가에서는 잉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잉어를 전문적으로 대량으로 키우고 잉어박물관까지 있어 잉어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잉어는 물살을 가르며 마음껏 앞으로 헤엄쳐 물고기 알이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2006년 12월 17일 잡힌 38.15kg 길이 110kg의 잉어

잉어는 평소에는 강이나 호수, 연못 수풀 아래 단독 또는 무리를 이루고 살온대성 민물고기이다. 겨울철 수온이 낮을 때는 동면 상태에서 물밑에 들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56월에 얕은 물의 식물과 돌 위에 대량의 알을 낳는다. 3~4일 후에 수정해서 부화한다. 봄이 되고 수온이 15℃에 오르면 활발하게 먹이를 찾아 25~28℃ 전후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자란다. 18℃ 정도의 온도에서 산란과 부화한다. 물론”천축 잉어”은 특수 어종의 경우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는 바닷 물고기이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알을 입에 넣어 부화시키지만 입에 알을 넣은 후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알이 알에서 부화할 때쯤은 기력이 쇠약해서 죽게 되므로 부성애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잉어의 알에서 깨어나고 약 3-4년 후에는 성숙하고 40년 이상 산다. 1년에 35㎝정도가 늘면서 100㎝정도까지 자라기도 한다. 잉어는 양식되어 식용하고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의 지역에서 자란다. 아직 잉어가 없는 곳으로는 남 아메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섬 등이다. 미국에서는 잉어는 일반적으로 해로운 어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먹이를 찾으려고 바닥을 파는 습성 때문에 진흙과 진흙을 부유시키고 물을 흐려이 부유한 진흙이 수중 식물 등 다른 물체의 표면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잉어는 그 종류만 2900여종에 이르는, 인공 배양하고 키우는 품종에만 매우 많다. 잉어의 종류 중 비단 잉어는 수천만 원이 만한 값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금붕어는 붕어 종으로 그 종류가 수없이 많아 가격도 비싸다. 최근 중국 푸저우에서 미녀 금붕어 선발 대회가 열리고 금붕어 1만마리가 참여했지만 달라진 형태의 금붕어가 참가했으며 참가한 금붕어의 일부는 1마리의 가격이 1만위안으로 한국 돈으로 170만원 이상이었다.

비단잉어.

비단잉어가 기록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중국 진나라 때 처음이며, 다양한 잉어를 양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양식된 것은 1820년 일본에서 시작되어 1830년 일본에서 유색 잉어가 매매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부터 품종이 개량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1914년 도쿄에서 개최된 다이쇼 박람회에서 홍백 우량종이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용인 자연 농원에서 처음으로 우수한 종을 도입하고 육성, 보급하기 시작했다. 비단 잉어는 본래부터 관상어로서 매우 부유한 사람만 감상할 만큼 깊은 사랑을 받았다. 가격이 싸지 않아 이름과 상징성을 더하면 행운을 준다고 알려졌다. 비단 잉어의 수명은 매우 긴, 60-70년 정도 살지만 『 쇼 오덴 』에는 200세를 살것도 있고 우의적으로 길상을 나타내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풍수 생선으로 관람물로 사랑을 받았다. 또 중국에서는 “잉어가 용문을 뛰어오르다(鱼 跃门 龙鲤”)”라는 전설이 있으며, 황하의 용문 폭포를 넘어선 잉어는 곧 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잉어는 확고하고 번창한 정신으로 봤다. 수염은 지혜와 학설을 대표한다. 전통적으로 잉어 문신은 일반적인 실력 앞 또는 납작한 다리로 한다. 용 모양 문신은 배후에 있는데 이것은 청년이 충분히 룽먼을 뛰어넘어 자신의 노력이 도편수의 재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조형의 잉어(얼굴빛, 수염의 수량 크기의 비례 등)은 건강 등의 미래에 대한 다른 기대로 사람 속의 용이 되는 것을 나타낸다. 비단 잉어는 행운을 대표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비단 잉어의 좋은 운이 주어지길 바란다. 중국에서는 양식 어업은 잉어가 중심이었다. 당나라 때는 잉어와 황실의 소리 소리가 같고, 잉어로 불리는 것이 금지되면서 점점 초어, 청어 등으로 불렸다. 당대 이후 점차 양식이 활발해지고도 1600년 전의 진나라 왕조에 치에표의 『 고금주 』 생선 벌레 편에서 이어. 품종이 적기, 청마, 현 카메, 백양, 황치 등 5종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미 파란 색, 검정색, 흰색, 노란 색 5색이 있었다. 당시, 잉어는 고급 요리 재료였다. 양식 잉어는 관상용으로 시작됐지만, 명나라 때 시작됐다. 명나라 신종은 정원에서 각종 잉어를 키우고 즐겼다. 본격적인 잉어 양식은 일본에서 열리고 일본 전국에 매우 활발하며 우리가 보면 전통 종이다. 아시아 잉어는 온몸이 가는 인편의 전통 잉어다. 독일 잉어는 체형이 비교적 크다. 잉어의 씨앗에 인편이 뒤 지느러미 양쪽으로 측선 부분에 있는 카가미 사토가 있고 온몸에 비늘이 없고 혁리가 있다. 이 3종이 비늘의 잉어 뷴류이다. 일반 잉어와 카가미 사토가 주요 거리인, 혁리 품종은 비교적 중시되지 않는다. 일본의 신사 현의 산곡 지촌 및 그 주변 마을 일대 수토은 비옥하다.신사는 옛날부터 유명한 생선과 쌀의 고향에서 현재 대만에서 가장 귀중한 수입이나와 미국으로 대접 받고 있다. 신사의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주업)로 잉어 양식은 부업으로 하는 논에서 키우고 근처에서 달아난 잉어들이 노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개량된 리종의 기원은 1800년 이후 도쿠가와 막부 시대이다. 골 마을이 금붕어의 발상지이다. 비단 잉어는 일본인에 의해서” 놀러 다니는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소중히 하고 옛날의 시에서는 예전 천황에게 바치는 종자 납품으로 고가이며, 일본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다. 비단 잉어에는 여러 색깔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색은 홍백 색이다. 잉어는 풀과 살아 있는 생선 등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잡식으로 몸도 큰 맹금류, 왜가리 같은 대형 동물 외에는 천적이 없다. 잡식성으로 음식을 찾고 물을 휘저어 혼탁도를 높인다. 이 때문에 잉어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환영 받지 않고 천적이 없어서 해롭다고 생각하고 구미인에게 환영 받지 않았다. 또 잉어는 염분에서도 상당 기간 생존뿐 아니라 2급수 이하의 오염된 물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주위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얼음 속의 추위에도 잘 견디며 알칼리에서도 강한 어느 정도 공기가 공기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견딘다. 흐르는 물과 정지된 물 속에서 알을 낳고 산란 장소는 수초이다. 계란은 수초 위에 달라붙어 자란다. 잉어는 담수 어류 중에서 품종도 가장 많이 분포가 가장 넓다. 양식의 역사는 가장 오래된. 서기 약 500년경에 저술된 중국 토 주 공의 『 양어 경 』에도 자세한 잉어의 사육 법이 기록되고 있다. 잉어의 맛은 달고 독이 없고 원산지는 아시아였으며 후에 유럽에 들어 북미 및 다른 지역에도 들어갔다. 호주와 미국 같은 경우에는 관상용으로 양식하는 어종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어온 잉어가 야생종이 되어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 등 문제를 일으키는 외래종이 됐다. 잉어는 홍수 때가 되자 강 하류에 내려서 바닷물이 섞여기수 구역이나 바다 속까지 밀려나서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잉어는 부화 직후의 어린 시절은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는데, 그 후는 잡식성이 되고 동물성과 식물성 먹이를 함께 먹는다. 겨울철 수온이 낮을 때에는 다른 냉혈 동물처럼 겨울잠을 자고 먹이를 먹지 않는데 봄이 되고 수온이 15℃ 전후로 올라가면 활발하게 먹이를 찾기 시작했고 25~28℃ 전후에서 가장 잘 먹고 다시 잘 자란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장기에 맞추어 어린 것이 자라도록 봄의 수온이 오르고 18℃ 정도 되면 산란과 부화를 한다. 알은 점착하고 자란다. 2. 잉어의 상징성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잉어가 자주 다뤄지지 않지만, 다른 국가와 달리 독일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런 이유로 독일인은 잉어의 비늘이 있는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가지고 다니거나 비늘 몇점을 지갑 안에 가지고 있다. 잉어의 비늘이 새해에 행운을 주고 부자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잉어는 “자손의 번영”과 “부와 장수”과 효를 상징하는 영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대표적인 입신 출세이다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가리키고 등용문을 통과할 정도로 용이 되면 천둥과 번개를 부르는 용이 된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지만 등용문의 그림으로 등용문을 통과하는 생선은 잉어로 그려졌다. 노보루 룽먼은 “후한서””이 가능)”의 주해에서 “황하 상류의 용문산 계곡에 폭포가 있고 그 아래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서 이곳을 올라가지 못하고 만약 오르게 되면 용이 된다.”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즉 용문 협곡의 흐름이 너무 강하지만 협곡을 올라가면 용이 되라는 고기는 잉어로 대표된다. 이런 의미에서 시험이나 취업을 등용문에 비교하고 입시나 취직의 합격, 승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동양 문화권에서 용이라는 존재는 12잡지에 등장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각별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십이지지에서 다른 동물에 비해서 용은 비와 바람을 날리는 천지 조화하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용은 왕권 내지 왕실의 상징으로 용 포구와 곤룡 포구를 입었다.

심사정의 ‘어약영일’ 그림심사정의 ‘어약영일’ 그림그의 몸체는 여러 동물의 신체 부위를 종합하여 구성된다. 용의 비늘은 잉어의 비늘 모양을 하고 있다. 뱀의 몸을 갖고 사슴의 뿔을 가지고 낙타의 얼굴에 토끼의 눈에 돼지 코와 암소의 귀을 갖고 있다. 이무기의 목에 뱀의 몸까지 81개의 비늘로 구성된 여러 동물을 조합한 영물이다. 4개의 발은 매 발톱과 호랑이의 발바닥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동물에서 육지에서 최상의 존재를 호랑이를 나타낸다고 하면 용은 물에서 최고의 존재로 인식되어, 용호상 박하다 룡쟁 호투다는 말을 내는 데 용이 될 존재로 뱀과 비슷한 이무기가 용이 되기 전 단계로 봤는데 잉어를 용의 전 단계로 본것이다. 입신 출세에서 다양한 어종 중에서 잉어를 대표적인 어종으로 잉어를 그리는 이유는 잉어는 그 크기에서 가장 높이 뛴다 도약성에 근거한 그리기 위해서 가끔 잉어를 대치하고 보라를 그리는 것도 있다. 조선 시대의 그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잉어의 그림은 동해의 일출 및 여의주를 안다며 거창한 잉어의 열망을 담아 그린 것으로서 “생선 약영 일”이 꼽힌다. “생선 약영 일”은 물고기가 물 위로 떠오르고 날을 맞는다”다는 의미이므로 강력한 모습이다. 현재 심사 정 1707~1769)이 1767년 환갑이 되던 해에 그린 것으로 완숙기에 들어가최고의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고 정성껏 그린 작품이다. 어떤 난관도 저 태양을 향해서 뛰겠다는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이 눈에 깃들어 있다. 그림에서 잉어는 글 공부를 하는 선비를 왕인 햇볕 게 다가오기를, 파도는 관직에 오르는 어려움을 나타낸 것을 상징한다. 또 잉어는 많은 알을 낳기 위해서 자손이 번창함을 나타내는 그림에서도 잉어 떼를 나타내고 이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종가에서는 제사 음식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다. 퇴계 종가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잉어를 올리되, 자손이 번창하시길 바라고 잉어를 공물로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잉어는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 시대에 왕권은 신하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하면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예를 창덕궁에서 정조가 건설한 주합는 주합는)의 정문인 매우 친밀한 무늬에서 볼 수 있다. 매우 친밀한 문의 어원은 물고기의 교제에서 한자의 의미는 바로”물과 물고기의 만남”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며 왕과 신하의 관계가 밀접함을 보였다. “물고기의 다리”는 “삼국지”의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는 문서”제갈량전에서 나오는데 유비가 제갈량을 너무 소중히 여기고 친밀하게 되면 관우와 장비가 불평을 했지만 유비가 그들을 부르고”나에게 제갈 공명이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가진 것이다(고아 노는 공명(공명)·우오노 아리 미즈 나시 수)”이라고 한 데서 태어났다. 유교를 선택한 조선 왕조에서 『 고려 사절요 』 〉과 『 왕조 실록 』에서도 “미사 슈우”라는 말이 수없이 많이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또 유교 국가인 조선 시대에는 당연히 효행이 장려되고 국가에서 『 삼강 행실도 』 등 효도에 관한 고사에 관한 책을 만들어 배포했지만, 그 중에 잉어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잉어가 효의 상징이라는 이유는 후한 때 강시와 스스무의 왕 더한층”쌍이 물고기가 “이라는 고사 이후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두 부모 효도고 겨울에 잉어를 구하던 중 얼음이 저절로 깨지고 2마리의 잉어가 뛰쳐나왔다는 효행 설화에서 이 고사가 바뀌고 약으로는 치료 못하는 병이거나 가난하고 약을 구할 수 없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손에 넣지 못하고 고생했지만 얼음 구멍에서 잉어가 솟구쳤다는 기적적인 효도담이 많은 효자라 타카오의 효도를 장려하기 위한 이야기로 상징됬다. 물고기는 상징성을 많이 나타내고 있지만 고구려 개국 신화인 주몽 설화에 나오는 코치 주몽이 도망 갈 때, 자라 그리고 물고기가 떠올라서 이거 밟고 넘어갔다는 말이 있어 백제 무령 왕릉의 머리 바늘도 용두 물고기가 있어 고려 동경과 청자 용두 물고기가 있어 귀중한 신분을 말한다. 쌍 어문은 부부애를 상징하는데 특히 김·수로 왕릉의 나라 어문이 유명하지만 김·장수로 왕의 부인 허 황후는 인도에서 왔다고 알려졌지만 인도 타밀족의 경우에 상호 어문을 사용하는 한국의 “나”,”당신”,”어머니”등 많은 타밀어가 한국 말과 비슷하고 허 황후와 인도와의 관련성을 일러 준다. 허 황후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탈출하고 살면서 난을 피하고 신라로 탈출하고 김수환 노 왕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어문의 손금을 가진 경우는 학문으로 대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 떼는 후손이 번창하는 것을 말한다. 입신 출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선 변성 용이 있지만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용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잉어를 가리키며, 가끔 숭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고기가 뛰어오르고 용이 된다고 생각하니 과거에 금지하고 입신 출세하는 것을 나타낸다. 잉어는 중국과 한국에서는 낚시꾼은 풍어의 대상으로 요리사에도 사랑 받고 미식 요리의 하나로 취급되어 왔다. 또 화가는 그림의 소재로서 이용되고, 도예가가 제작하는 도자기에는 잉어 모양이 많이 들어간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잉어의 꿈은 아들을 낳아 부자가 되고 대성할 봤다. 잉어에 대한 꿈을 꾸면 후손이 없는 사람은 자손이 번창하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창하면서”부”와 “명예”또는”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조사하면 낚시 등에서 잉어를 잡아 올리면 재물이 늘어나거나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며 개울이나 강 등에서 잉어를 잡을 경우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자신을 돕게 되어 귀인 등에 만난다는, 뛰는 잉어를 보면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번창하게 된다. 잉어를 잡아 먹으면 승진하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등의 행운이 따른다. 집의 연못 등에 잉어를 놓아준 꿈은 경사를 갖게 되는 꿈으로 해석했고, 붕어가 잉어에 변하는 꿈은 이무기가 용이 되게 빨리 승진하는 것으로 본다. 물가에서 헤엄치는 잉어를 보거나 집에 가져오는 꿈은 일이 번창하면서 좋은 결과를 갖게 되고 잉어를 가슴에 품으면 아들을 낳고 흰 잉어를 보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본다. 이처럼 잉어의 꿈은 꿈을 꾼 사람의 운수가 아주 길에 나타나거나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행운의 소식을 듣기를 나타내는 꿈이다. 잉어를 낚거나 볼 경우 행운과 재산을 갖거나 승진이나 귀인을 만난 상징성을 갖는다. 그런데 잉어를 혼자 가지면 혼자 갖게 되는데 이를 나눠서 먹거나 갈라놓거나 하면 재물을 함께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낚은 잉어를 죽이고 버릴 경우, 찾아온 행운을 잃고 상심하는 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수중에 있는 잉어에게 음식을 던질 경우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하고, 나중에 큰 보상을 받는 꿈과 해석하고 잉어의 크기가 클수록 큰 복을 받자 알고 있다. 잉어 요리를 먹었다면, 추진하는 것이나 꿈꾼 희망을 이룰 것을 의미한다. 반면 죽은 잉어를 보면 병나고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생겨서 병원에 다니거나 산모는 낙태를 하고 낚은 잉어를 땅에 떨어뜨리는 꿈은 자신의 연인과 헤어지거나 일이 이뤄지지 않고 꼬이기도 한다. 낚은 잉어를 놓치더라도 일이 난관에 부닥치고 어렵다고 한다. 이처럼 민간에서도 잉어는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음식의 재료와 집에서 기를 관상어더라도 사랑을 받았다. 공자는 아내가 아들을 해산하자 한 사람이 여러 마리의 잉어를 보내자 공자는 기뻐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잉어”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를 통해서 중국에서는 이전부터 잉어를 길상의 상징으로 보면 습속이 있고 공자가 살던 춘추 시기에 이미 널리 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잉어는 우정과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 시경·천 유타카·)글 』에는 “한 아내를 얻을 때는 반드시 제나라의 강 씨 일족의 아내를 얻고 고기를 먹으러 있어서는 반드시 황하의 잉어를 먹어야 하는가”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황하의 잉어를 최고로 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고기잡이 물 합환”은 아름다운 혼인을 축복하는 말이 됐다. 거기서 “잘 냐은자”이라는 의식이 태어났다. 이는 신랑이 만두에서 나갈 때 남쪽에 있던 사람이 동전을 잉어에 뿌리고 잉어가 자라고 재수가 좋도록 축복하다. 고인들은 고기 모양을 한 목판을 쓰고 봉투(문을 보관하는 상자)로 한다. 이런 이유에서 옛날의 시에서 잉어는 우정과 애정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 설화에서 잉어는 엄동 설한의 겨울에 환자의 기력을 돋우는 육식과 아무런 손에 들지 않을 때 효자가 병에 걸린 부모님께 공양하는 데 모든 노력 끝에 어렵게 구한 물고기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잉어였다. 그런가 하면 잉어는 용왕의 아들로 등장하거나 파평 그의 고리관왕 설화도 잉어가 나타나고 건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일본에서도 길한 생선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 잉어의 깃발인 코이노 보리가 있다. 이 깃발은 잉어가 오르겠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5월 5일 남자의 날 단옷날에 걸리고 남자의 출세와 건강을 빈다.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에는 잉어의 이름으로 한 프로 야구 팀”히로시마 토요 카프”가 있다.용의 몸통은 여러 동물의 신체 부위를 종합해 구성된다. 용의 비늘은 잉어의 비늘 모양을 하고 있다. 뱀의 몸을 가지고, 사슴뿔을 가지고, 낙타의 얼굴에, 토끼의 눈에 돼지코와 암소의 귀를 가지고 있다. 구렁이의 목에 뱀의 몸까지 81개의 비늘로 이루어진 여러 동물을 조합한 영물이다. 네 발은 매 발톱과 호랑이 발바닥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동물로 육지에서 최상의 존재를 호랑이를 나타낸다면, 용은 물에서 최고의 존재로 인식되었고, 용호상박과 용쟁호투라는 말을 나타내는데 용이 될 수 있는 존재로서 뱀 모양과 같은 구렁이가 용이 되기 전 단계로 보았는데, 잉어를 용의 전 단계로 본 것이다. 입신출세로 여러 어종 중 잉어를 대표적인 어종으로 잉어를 그리는 이유는 잉어는 그 크기에서 가장 높이 치솟는 도약성을 바탕으로 그리기 때문으로 간혹 잉어를 대치하여 숭어를 그리기도 한다. 조선 시대 그림 중 가장 대표적인 잉어 그림으로는 동해의 일출 및 여의주를 안고자 하는 웅장한 잉어의 열망을 담아 그린 것으로 ‘어약영일’을 들 수 있다. ‘어약영일’은 물고기가 물 위로 떠올라 해를 맞는다’는 뜻이어서 힘찬 모습이다. 현재 심사정 1707~1769)가 1767년 환갑이 되던 해에 그린 것으로 완숙기에 접어들어 최고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여 정성껏 그린 작품이다. 어떤 난관도 저 태양을 향해 치솟으려는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눈에 담겨 있다. 그림에서 잉어는 글공부를 하는 선비를 왕인 태양게에게 다가가는 것을, 파도는 벼슬에 오르는 어려움을 나타냈음을 상징한다. 또한 잉어는 많은 알을 낳기 때문에 후손들이 번성함을 나타내고 그림에서도 잉어 무리를 나타내 이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종가에서는 제사 음식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다. 퇴계 종가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잉어를 올리는데 후손들이 번창하기를 바라며 잉어를 제물로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잉어는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시대에 왕권은 신하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면 왕과 신하의 관계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를 창덕궁에서 정조가 건설한 주합루(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에서 볼 수 있다. 어수문의 어원은 수어지교로 한자의 뜻은 바로 ‘물과 물고기의 교제’라는 뜻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보여 왕과 신하의 관계가 밀접함을 보여준다. 『수어지교』는 『삼국지』의 『촉서』 제갈량전에서 나오는데, 유비가 제갈량을 너무 아끼고 친밀해지자 관우와 장비가 불평하였는데, 유비가 이들을 불러 “내게 제갈공명이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같다(고지유공명·어지유수무수)”고 한 데서 생겨났다. 유교를 선택한 조선왕조에서 <고려사절요>와 <왕조실록>에서도 <어수>라는 단어가 수없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교 국가인 조선 시대에는 당연히 효도가 장려되어 국가에서 『삼강행실도』 등 효도에 관한 고사에 관한 책을 만들어 배포하였는데, 그 중 잉어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잉어가 효의 상징으로 삼은 이유는 후한 때 강시와 진나라 왕상의 ‘쌍리어출’이라는 고사 이후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두 사람의 효도로 겨울에 잉어를 구했더니 얼음이 저절로 깨져 두 마리의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효도 설화로, 이 고사가 바뀌어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거나 가난하여 약을 구할 수 없는 겨울이어서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얼음구멍에서 잉어가 솟아올랐다는 기적적인 효도담이 많은 효자와 효부의 효도를 권하기 위한 이야기로 상징되었다. 물고기는 상징성을 많이 나타내는데 고구려 개국 신화인 주몽 설화에 등장하는 고주몽이 도망칠 때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 이를 밟고 건넜다는 이야기가 있고, 백제 무령왕릉의 두침에도 용두어가 있고 고려 동경과 청자의 용두어가 있어 귀중한 신분을 말한다. 쌍어문은 부부애를 상징하는데, 특히 김수로왕릉의 쌍어문이 유명한데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는 인도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인도 타밀족의 경우 쌍어문을 사용하며, 한국의 ‘나’, ‘너’, ‘엄마’ 등 많은 타밀어가 한국말과 비슷하여 허황후와 인도와의 연관성을 알려준다. 허황후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탈출해 살다가 난을 피해 신라로 탈출해 김수로왕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어문의 손금을 가진 경우 학문에 대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떼는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말한다. 입신출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어변성룡이 있는데 물고기가 날아올라 용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잉어를 가리키며 간혹 숭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고기가 뛰어올라 용이 된다는 것이니 과거 금제하고 입신출세함을 나타낸다. 잉어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낚시꾼들에게 대어의 대상이 되고 요리사들에게도 친숙해져 미식 요리의 하나로 취급되어 왔다. 또한 화가들에게는 그림의 소재로 이용되며, 도예가 제작하는 도자기에는 잉어 무늬가 많이 들어간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잉어의 꿈은 아들을 낳아 부자가 되거나 대성한다고 보았다. 잉어에 대한 꿈을 꾸면 자손이 없는 사람은 자손이 번창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창하여 ‘부’와 ‘명예’ 또는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낚시 등으로 잉어를 잡으면 재물이 늘어나거나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고 하며, 개울이나 강 등에서 잉어를 잡을 경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자신을 돕게 되는 귀인 등을 만난다고 하며, 뛰어오르는 잉어를 보면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번창하게 된다. 잉어를 잡아 먹으면 승진하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등 행운이 따른다. 집 연못 등에 잉어를 풀어놓은 꿈은 경사를 갖게 되는 꿈으로 해석하고 붕어가 잉어로 변하는 꿈은 구렁이가 용이 되도록 빨리 승진하곤 하는 것으로 본다. 물가에서 헤엄치는 잉어를 보거나 집으로 가져오는 꿈은 일이 번창하여 좋은 결과를 갖게 되며 잉어를 품에 안으면 아들을 낳고 흰잉어를 보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본다. 이처럼 잉어의 꿈은 꿈을 꾼 사람의 운세가 매우 길하게 나타나거나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행운의 소식을 듣는 것을 나타내는 꿈이다. 잉어를 잡거나 볼 경우 행운이나 재산을 가지거나 승진이나 귀인을 만나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런데 잉어를 혼자 잡으면 혼자 갖게 되는데, 이를 나눠 먹거나 쪼개면 재물을 함께 나누게 된다고 한다. 반면 잡은 잉어를 죽여 버릴 경우 찾아온 행운을 잃거나 상심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며, 물속에 있는 잉어에게 음식을 던져 줄 경우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 나중에 큰 보상을 받는 꿈으로 해석하여 잉어의 크기가 클수록 큰 복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잉어 요리를 해 먹었다면 추진하는 것이나 꿈꾸던 희망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죽은 잉어를 보면 병들어 병원 신세를 질 수 있어 병원에 다니거나 임산부는 낙태를 하고 낚은 잉어를 땅에 떨어뜨리는 꿈은 자신의 애인과 헤어지거나 일이 이뤄지지 않아 꼬이기도 한다. 낚은 잉어를 놓칠 경우에도 일이 난관에 부딪혀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처럼 민간에서도 잉어는 재수가 좋은 존재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음식 재료나 집에서 기르는 관상어로도 사랑받았다. 공자는 아내가 사내아이를 해산하자 어떤 사람이 잉어 몇 마리를 보내오자 공자는 기뻐하며 아들의 이름을 잉어라고 지었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잉어를 길상의 상징으로 보는 습속이 있어 공자가 살던 춘추 시기에 이미 널리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잉어는 우정과 애정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시경 진풍 형문』에는 “어떤 아내를 얻을 때는 반드시 제나라 강씨 가문의 아내를 얻어 고기를 먹을 때는 반드시 황하 잉어를 먹어야 하는가”라고 적혀 있어 황하 잉어를 최고로 쳤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어수합환은 아름다운 혼인을 축복하는 말이 됐다. 그래서 “냥이”라는 의식이 생겼다. 이는 신랑이 만두에서 나올 때 남쪽에 있던 사람이 동전을 잉어에게 뿌려 잉어가 자라 재수가 있도록 축복한다. 고인들은 고기 모양의 목판을 사용하여 봉투(글을 보관하는 상자)로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옛 시에서 잉어는 우정과 애정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 설화에서 잉어는 엄동설한의 겨울에 병자의 기운을 돋우는 육식이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을 때 효자가 병든 부모님께 공양하기 위해 갖은 노력 끝에 어렵게 구한 물고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잉어였다. 그런가 하면 잉어는 용왕의 아들로 등장하기도 하고, 파평 윤씨 윤관 설화에서도 잉어가 나타나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본에서도 길한 생선으로 꼽혔다. 그 중에 잉어 깃발인 고이노보리가 있다. 이 깃발은 잉어가 오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5월 5일 남자아이의 날 단오절에 걸려 남자아이의 출세와 건강을 기원한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에는 잉어의 이름을 딴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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