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어우러지는 낙동강 전망의 작원관지의 여름

밀양 삼랑진과도 큰 바위에 새긴 검세마을 검만교를 지나 도착한 곳은 작원관터 입구입니다.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작년에는 가파른 높은 곳을 바라보기만 하고 가지 않았던 그곳을 힘차게 올라가 보았습니다.

더운 여름 작열하는 태양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라 아침 일찍 도착했습니다.높고 가파른 계단이지만 꼭 가봐야 할 이유는 이곳에 의미 있는 작원관 위령탑이 있기도 하지만 탑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원관 터, 이곳은 조선 시대 작원관 옛 터이다.작원관은 본래 부산과 서울(한양)을 잇는 영남대로 중로 구간 중 험난한 벼랑길인 작원잔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이곳에 있던 작원관은 1936년 대홍수 때 수해를 입어 헐렸고, 그때 작원관에 걸려 있던 현판은 밀양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1995년 복원한 현재의 작원관은 경부선 철도에 의해 원위치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 표지

탁 트인 시야에 작원관도의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잘 어울리는 낙동강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습니다.철도도 보이지만 전철이 한 대라도 지나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낼 것 같습니다.

작원관 위령탑 이곳 작원관은 옛날 원, 관, 진의 역할을 겸하던 곳으로 교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군관 300여 명이 왜적 1만8700여 명을 상대로 결사항전(1592년 4월 17일)을 치른 전적지로서 구국충혼이 잠든 성지입니다.

그 당시 치열했던 전쟁에 목숨을 걸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각인될 수 있도록 부각되어 있습니다.장렬한 죽음 앞에서 후인들은 그 높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옷깃을 여미기를 갈망함으로써 글을 새겼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와 덤불 사이에서 향나무는 연두색으로 또 다른 색감이 돋보이는 위령탑 앞 조경수입니다.

가로지르는 철로를 보면 작원관 터는 과거 영남지방의 동서남북의 중요한 교통요충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낙동강을 배경으로 전철이 지나갈 때 한 컷 찍으면 멋있을 것 같은데 기다려도 안 오네요. 어쩔 수 없이 계단을 내려가볼게요.

이곳은 자전거 종주로의 길목이기도 하고 자전거 라이더들이 지나가는데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도 해서 한번 자전거가 많은데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차가 보입니다. 정말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네요.

먼저, 작원관 비각에 사진을 찍기 위해 가면 3개의 비각이 보입니다. 작원관문기지비, 작원대교비, 작원진석교비입니다. 작원관을 제자리에서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복원하고 옛터에 있던 비석도 함께 옮겨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습니다.

비각 중앙에 있는 비석이 ‘작원관문기지비’로 1939년 작원관 옛터에 세워진 것을 작원관의 본래 위치와 이후 이전 관계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좌우에 ‘작원진 석교비’는 검세리 2번지의 작원 비석거리에, ‘작원대교비’는 본래 삼랑진읍 검세리 13번지의 작원음두거리에 각각 있었습니다.1971년 검세리 3번지 작원관문기지비 옆에 이설되어 다시 이곳에 보존되었다고 합니다.이곳은 결사항전을 벌이며 구국의 충혼이 잠든 성지이기도 하지만 수백 년을 피땀 흘린 지역민들의 애환이 서린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인지 일찍 이곳에 도착한 분들은 이곳 지역 주민들이었습니다. 시원한 그늘을 찾아서 여기 앉아서 얘기 중이네요.얼굴이 보이지 않게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보라고 하면 부끄러워해요.경부선 철도가 개설되자 원래 자리에서 쫓겨나 낙동강 변에 자리 잡았는데 1936년 대홍수에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다고 합니다.이때 복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이 송만술 선생님이었습니다.그는 작원관의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작원관을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그 복원을 보지 못하고 타계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마침 기다리던 기차가 한 대 지나갑니다.긴 것도 긴 기차인데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겨우 찍을 수 있었어요.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유튜브 촬영인줄 알고 잘 찍어달래요.요즘은 어른들도 정보가 평범하지 않아요.한남문 천장에는 보기에도 신성한 동물 2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닭과 봉황을 섞은 모습이 특이합니다. 부처, 남쪽을 관장하는 사신 중 하나인 주작의 모습이라고도 합니다.백일홍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한남문작원관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영남지방의 동서,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세운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던 관원의 숙소를 원,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곳을 관(關)이라 하였다. 작원관은 관원의 숙소와 일반인의 검문을 위해 지어진 시설로 남해에서 올라오는 왜적의 방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낙동강 변의 작성진이라는 나루터를 오르내리는 사람과 화물도 검문하여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싸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흔적을 표시하는 비석만 남아 있었으나 1995년 작원관 성문을 복원하여 세웠다. 작원 관지 안내 표지굳게 닫혀 있는 한남문영남대로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자 요새이자 교통지, 낙동강을 지키던 이 작원관 터의 뜻깊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아름다운 밀양의 자연경관과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드라이브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2022년 밀양시 SNS 알리미 이도윤작원관터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작원관터주차장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터길 77작원관터주차장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터길 77작원관터주차장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터길 77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