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4일 장영찬
청나라가 쳐들어와서 조선의 왕이 남한산성으로 도망쳤다. 두 장관이 다툰다. 이병헌 장관: 왕과 백성이 살기 위해서는 청나라에 항복해야 한다.김윤석 장관: 오랑캐 청나라에 항복하는 치욕을 겪는 것보다 다 같이 죽는 게 낫다.영의정을 포함한 모든 장관: 아무 생각이 없다. 나라를 망친 주인공들 요즘 언론처럼 왕이 이래도 비판하고 이러지 않아도 비판. 오로지 비판하고 남의 탓밖에 할 수 없다.
영화는 이병헌과 김윤석의 논쟁을 주요 줄거리로 삼고 있다. 청나라에 굴복할지 말지.
영화의 핵심은 개연성이다. 개연성이라는 현실에서도 참 그럴듯한 성질. 개연성이 없으면 영화는 망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모두 개연성이 낮다. 처음에는 개연성이 높아 보이지만 생각할수록 전혀 그렇지 않다.
이병헌 장관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청와대와 외교를 통해 전쟁을 막으려 한다. 과연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전쟁을 막으려고 헌신하는 장관이 있었을까. 개연성이 낮다.
김윤석 장관은 사리사욕이 전혀 없고 청나라는 오랑캐이므로 조선이 오랑캐에게 항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우선 그 시대에 저렇게 사리사욕이 없는 장관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둘째, 저렇게 똑똑하고 정의를 중요시한다는 사람이 오직 청나라가 오랑캐여서 항복할 수 없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이 모순이다.
오히려 영화 속 영의정과 나머지 장관들이 훨씬 높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오직 내 살 길만 찾다가 실력이 없어 전투를 했다면 내 병사 300명 정도면 순식간에 몰살당하고, 그래도 책임을 교묘하게 남의 탓으로 돌리고, 또 다른 사람도 죽게 만든다.
이 영화는 500만 관객을 모으지 못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저렇게 개연성이 없는 인물 때문이다.
개연성이 없는 인물은 아직 있다. 극중 대장장이 그런 와중에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임무를 그렇게 충실히 수행하는 백성? 적어도 병자호란 속에 저런 백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왕이 궁을 버리고 도망치는 가운데 백성들이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몰살당한 백성 7만 명은 당시 진주시장이었던 장군이 칼로 위협해 화살을 퍼붓기 위해 성안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었다.
원작자 김훈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굉장히 충성스럽고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망했다. 영화가 더 성공하려면 영의정 같은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집중적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자신들이 부정부패 행동을 저질러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남을 탓하는 인간들.
예를 들어 625전쟁 때 학도병들의 밥값을 빼돌려 학도병 수만 명을 굶겨죽이게 하는 장군들의 정신상태.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망하는 순간조차 이순신이 승진하기 싫어 거짓으로 상소하고 결국 이순신이 감옥에 보내버리는 인간들의 정신상태. 나라가 망하는 사건을 소재로 했다면 주요 내용은 그 이유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했다.
이 영화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이들을 역사적 실제와는 전혀 다르게 묘사했기 때문에 한국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