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카르도 가족으로 사는 법(Being the Ricardos)>(2022/02/12:아마존프라임비디오)

아론 소킨 감독의 신작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는 리카르도 가족으로 살 거야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에는 비잉 더 리카르도스라는 이름으로 각각 소개되고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오버 더 톱 서비스(OTT)가 궐기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심지어 지금은 극장 개봉하자마자 안방 상영을 하는 일까지 왕왕 일어나니 우리 검색엔진이 모든 작품을 일원화해서 쫓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요. 이렇게 영화 제목이 여러 개로 나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후보작을 골라놓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서비스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남녀 주연상 부문 모두와 남우조연상에 각각 후보를 낸 그야말로 연기력이 공인된 작품이니까요.(애플TV 진영의 <맥베스의 비극>도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죠.)

연출가보다는 여전히 각본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아론 소킨’의 작품 세계는 항상 엄청난 대사량으로 관객을 공략해 왔어요. 실제로 소셜네트워크 머니볼, 그리고 TV시리즈 뉴스룸 등 그가 쓴 스토리는 리듬감 있는 대사와 그런 대사를 통해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상황 연출로 관객의 가슴에 불을 붙이곤 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은 특히 출연자의 구성에 따라 극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대사를 그대로 소화할 수 있는 누군가가 각자의 장소에서 최대 역량을 발휘해야만 다소 작위적인 각본도 생동감으로 맺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195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언 루실 볼의 생애를 다룬 이번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각본상이 아닌 연기상 쪽으로만 후보를 낸 것도 바로 그런 연출가의 특징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어요. 결국 이 각본을 살린 것은 니콜 키드먼이나 하비에르 발뎀, J K 시몬스 등 출연진의 역량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대사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는 효과가 러닝타임 내내 발휘됩니다.(물론 그것은 아론 소킨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번 작품의 대사량이 현격히 적어진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특히 촬영 후 후보 선정 작업에서 얼굴을 루실 볼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니콜 키드먼의 퍼포먼스는 그 때 별 볼일 없는 히드먼이 해 주는 장면 그대로입니다. 광기처럼 보이던 그녀의 태도가 실은 어떤 것을 위한 것이었는지가 드러나는 극 후반부는 묘한 동정을 자아냅니다. 다만 공산당 지지자라고 기입한 그녀의 선택이 왜 이렇게까지 지탄받아야 했는지, 혹은 백인들이 히스패닉계와 결혼해 출산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같은 시대 풍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극의 감흥이 다소 누그러질 것 같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결국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펼쳐지는 영화 속 사건들은 사실 가족이라는 공허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한 여성의 고군분투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루실(니콜 키드먼 분)’에게 <와석 루시>는 가정보다 훨씬 가정에 더 멋진 직장이었던 셈이죠. 사실 너무 바빴던 자신과 그녀의 남편 데시(하비에르 발뎀 쪽)는 이곳이 아니면 도저히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극중반 루실이 연출자인 제스(토니 헤일분)에게 접근해 데시를 연출자 자리에 세워달라는 대사, 이 쇼가 계속 인기를 끌 수 있도록 동료 연기자들에게 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하는 장면 등에는 무슨 수를 써도 내 가정만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절실함이 넘칩니다. 알면서도 적당히 모른 척해야 하는 루시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서 종종 슬픔이 묻어났던 것도 어쩌면 드라마 밖의 루시 상황이 그의 연기에 달라붙어 겹쳐진 탓이 아닐까 싶어요.